건물의 대지 (site)
대지는 여러 면에서 건물의 모양을 좌우하게 됩니다. 대지 내에 있는 나무 및 바위가 건물의 평면 배치를 결정할 때도 있습니다. 지형에 따라서는 건물이 기둥 위에 얹힌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지형의 고저차 때문에 건물의 바닥 높이를 달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급한 경사로 된 대지에 세워지는 건물 가운데는 거대한 계단처럼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대지의 크기 또한 건물의 형태를 결정하는 요소입니다.
사람이나 경제적 여건도 건물의 형태를 결정하는 요소들입니다. 건물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의 수나 건물에 관한 그들의 욕구도 공간을 형성하고 형태를 결정하며, 건설 자금도 건물의 질은 물론이고 건물의 모양이나 크기를 결정하는 데 큰 몫을 합니다. 실제로 건축가들은 건축주들에게 "당신의 돈지갑이 곧 당신의 건축가입니다"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지가 건물의 모양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지는 위치, 크기, 지형, 그리고 기후에 따라 공간의 모양을 결정하고 형태를 규정합니다. 대지는 그 위에 세워지는 건물 못지않게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큰 요소가 되고 있어서 때로는 좋지 못한 건물도 좋게 보이게 하는 경우가 있으며, 나무에 둘러싸여 있을 때는 좋은 집도 나무가 없는 초원에 옮겨다 놓으면 형편없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대지의 고저차에 따라 때로는 독특한 형태 및 구조가 요구되기도 합니다. 특히 급경사를 이룬 지형에 맞게 특별히 설계된 건물을 평탄한 땅에 옮겨서 지을 수 없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물가의 경치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된 건물을 복잡한 교차로의 모 퉁이에 세울 수 없습니다. 만약 건축의 대지가 시골에 있고 크다면 단층집이 합리적이지만 대지가 시가지에 있고 작다면 같은 바닥면적을 취하기 위하여 다층의 집이 가장 적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지가 형태를 결정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대지에 따른 건물의 성격
대지는 또한 건물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대지가 대도시의 도심지에 있는지, 교외 언덕 위에 있어서 아름다운 호수를 내려다 볼 수 있는지에 따라 상황은 달라집니다. 도시에 있는 건물이 교외에 있는 건 물보다 고려해야 할 이웃이 더 많습니다. 도시 중의 대지에서는 시골과는 전혀 다른 외부처리 및 조경이 요구됩니다. 뉴욕시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도회지가 아닌 넓은 저택과 같은 대지에만 적합하다고 신랄하게 비평받은 바 있습니다. 도시나 교외이거나 고밀도 지구에서는 이용자들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더 많은 빌딩과 큰 대지가 요구됩니다.
도시 내의 대지에서 가로 모양이나 높이 제한, 건물의 후퇴 등의 규정 때문에 건물의 크기나 모양이 어쩔 수 없이 정해집니다. 그러나 바다, 산, 그리고 계곡을 바라볼 수 있는 대지에서는 건물은 보통 방향성을 갖고 전망이 좋은 쪽을 향하게 됩니다. 숲 속의 건물들은 일반적으로 외부로 향해 열려 아늑하고 낮은 밝기와 근처의 푸른 숲을 충분히 이용합니다.
사막에 있는 대지의 건물은 대체로 안을 향해 열려 있으며, 하늘과 땅의 극심한 밝기나 때로는 심한 기후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전망이나 넓은 경관을 보기 위한 창들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물이란 그것이 세워질 지역 고유의 특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이란 무엇이며, 어느 정도의 크기를 갖고 있어야 하는가? 한 나라와 같은 크기인지 아니면 미국과 같은 나라의 16 정도 크기인지, 이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미국에는 북서부 지역이라는 곳이 있어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회사판 세계지도에 의하면 다섯 개의 주를 커버하고 있지만 이 지역에서는 "남서부 건축"과 다른 "북서부 건축"을 갖고 있어야 할까요? 해답을 생각하기 전에 다섯 주(1) 가운데 하나인 워싱턴주에 대하여 잘 생각해 보면, 연간 강우량은 연안지방의 12피트(3,600mm)에서 캐스케이드산맥 동쪽의 불과 몇 인치까지로 전혀 다르며, 높이는 시애틀의 해발 몇 인치에서 레이니어 산정의 해발 14,410피트(4,330m)까지 차이가 있습니다. 수목도 마찬가지로 다양합니다. 산맥의 동측은 나무가 없는 사막이며, 서측은 깊고 울창한 강우림이 펼쳐져 있습니다. 기온도 워싱턴 주에서는 천차만별입니다. 그러므로 건물은 지역 고유의 특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그 지역이란 말을 정의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을 가로의 이쪽저쪽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일까요? 미기후(microclimate)를 연구한 사람에 의하면 겨울바람은 언덕이나 나무와 같은 자연의 장벽이나 건물, 담, 조경물 등과 같은 인공장벽으로 인하여 도로의 양쪽에서 부는 방향이 서로 다를 수도 있습니다. 토양을 조사해 봐도 표층토나 하층토가 모두 달라서 한쪽은 큰 돌과 자갈이 섞인 것인데 반해 또 한쪽은 비옥한 토양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형까지도 서로 많이 달라서 한쪽은 평탄한데 다른 쪽은 급경사로 떨어져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건축의 대지는 깊은 숲의 일부인 반면에 도로 건너편의 대지에는 전혀 수목이 자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100피트(30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두 대지에 있어서 기능상의 요구사항이 같다고 하더라도 각기 다른 공간, 형태, 그리고 구조를 필요로 할 수도 있습니다. 즉, 대지가 건물의 모양을 규정짓는 것입니다. 특히 이 점을 강조해 두고 싶습니다.
한 지역 안에서 국지적인 조건들은 대단한 차이를 보일 수도 있지만 본래 건축자재의 입수 가능성, 평균적인 기후 또는 지형적 조건, 그리고 생활양식 등에서 비롯된 지역적 특성이라는 개념에서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습니다. 현대의 기술이 이들 본래의 조건들을 극복할 수 있어서 이제는 같은 방식을 적용하려 들지는 않지만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인식한 다는 것은 감수성 있게 다루어진 현대건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