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빛 (Light)
건축은 공간이나 형태에 못지않게 빛에도 의존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빛이 형태에 색칠하여 눈에 인식되게 합니다. 문틈으로 어두운 방안을 들여다보면, 검은 어두움을 볼 뿐입니다. 전등 스위치를 넣으면 그제야 공간을 보게 됩니다. 빛은 공간과 형태의 촉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간과 형태를 체험하려는 사람은 빛의 유무에 따라 다른 신호를 받게 됩니다. 이 신호에 따라 건축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거실에 인접하여 거실과 같은 크기의 온실이 있고, 유리벽으로 두 공간이 구획되어 있다고 합시다. 밤에 거실의 불이 켜지고 온실의 불은 켜지지 않았을 때 그 사이의 유리는 광택 있고 검은 불투명의 벽이 됩니다. 그러나 온실 쪽에 불을 켜면 공간은 순간에 두 배의 크기로 되고 두 개의 방은 일체가 됩니다. 첨가된 빛이 정경을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빛이 형태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가 하는 것은 낮과 밤의 대비를 보면 명백해집니다. 외부의 빛이 줄고 내부의 빛이 더해지면 형태가 달라집니다. 뉴욕의 시그람 빌딩은 밤에는 조소적 형태에서 골격적 형태로 변합니다. 낮에 조소적 형태를 취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의 어떤 건물은 밤에는 평면적 형태로 변합니다. 낮에는 그저 평범했던 많은 건물도 밤에는 거대한 전등처럼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낮에는 주위를 위압할 정도로 시각적으로 강했던 건물도 밤에는 몰래 없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수도 있습니다. 창이 없는 건물에서도 외부 형태는 낮과 밤에 달리 보이는데, 그것은 밤에 밑에서 위로 향해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위에서 비추는 낮의 태양광선과는 다른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뉴멕시코 주에서의 태양광선과 메인 주의 태양광선은 아주 다릅니다. 예를 들면 강렬하고 높은 태양과 눈부신 하늘 아래의 뉴멕시코의 건물들은 형태를 명확히 보이게 하는 높은 조도의 빛을 받지만 태양이 비교적 낮고 약한 메인 주에서는 색채의 대비가 낮에 건물 형태를 돋보이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해가 일찍 지는 겨울에는 창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전등 빛은 건물의 외형을 드러나게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들 창들은 귀중한 겨울 태양 볕을 실내에 끌어들이는 역할도 합니다. 기온, 습도, 바람, 그리고 우량의 차이와 함께 빛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특정의 지역이나 지역 내의 특정의 대지에 맞추어서 건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분명한 이유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건축가의 자연광 활용을 위한 노력
건축가나 그와 협력하는 조명설계자는 태양이나 전구에서 직접 빛을 내는 직접조명과 물체를 비추기 전에 일단 다른 표면에 반사시켜 비추는 간접조명의 미묘한 차이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재료의 질감이 과장되고 어떻게 하면 감소하는가를 알고 있으며, 또 어떻게 하면 형태가 전등 빛이나 햇빛에 의해 강조될 수 있는가도 알고 있습니다. 방법은 단 한 가지, 즉 자연광선이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거대한 분묘를 건설했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조각가나 화가들이 작업하던 깊은 터널 속에 빛을 반사시켜 넣기 위하여 거울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그때 기름등잔을 썼다면 그절묘하게 새겨 그린 벽화는 그을음으로 검어졌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3,000여 년 전에 이미 고창(clerestory)을 사용한 조명 방법을 발명했습니다. 고창이란 벽과 지붕 사이에 만들어진 개구부로 그곳을 통해 실내로 깊게 광선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집트의 신전 중에는 태양과 하늘로부터 빛을 얻기 위하여 60피트(18m) 높이에 고창을 설치한 것도 있습니다. 수세기 후에 그리스의 건축가들도 이와 같은 기법을 썼으며, 로마, 인도, 그리고 고딕 시대의 유럽인들도 같은 기법을 썼던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건축가들은 자연광선을 깊은 공간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높은 창들을 디자인해왔고, 높을수록 좋다고 생각했으며, 대성당들은 가장 높은 창을 갖고 있었습니다. 19세기 중엽에는 천창이 실내를 실외와 같이 밝게 하는 방법으로서 인기가 있었는데, 1851년 런던 박람회를 위하여 설계된 수정궁(Crystal Palace)은 이런 종류의 건물로서는 가장 큰 것으로 그 면적은 77만 평방피트(23만 평방미터)나 되었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무렵에 특히 공장과 같이 큰 바닥 면적을 가진 건물을 필요로 하게 됨에 따라 톱모양의 지붕이 나타났습니다. 이 시기와 거의 같은 때는 영국의 건축가들의 자연광선을 취하는 기술은 매우 세련되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940년대 자연채광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1950년대에 와서는 플라스틱 천창을 넓게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기술 발달에 따라 반투명의 테프론 피막 처리가 된 유리섬유에 힘입어 제한을 받지 않는 거대한 풍선(부풀릴 수 있는 이른바 공기막 구조)이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맑게 개인 날 이렇게 피막으로 캡슐화된 내부공간의 조도는 무려 600촉광이나 됩니다.
자연채광은 예술이고 또한 과학입니다. 자연채광을 예술로 다른 현대의 거장들로는 라이트, 르 코르뷔지에, 카안 등이 있습니다. 그들은 태양의 성향과 이 태양 하에서 건물이 어떠해야만 하는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반 조명과 함께 특수한 채광효과를 써서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미학적 관점에서 전기에 의한 조명은 자연광에 비견할 수 없습니다. 전기 조명 시스템이 작업에 적당한 광량을 주고 있으나 노동자에게 쾌적한 느낌을 주는 데는 태양광선 쪽이 훨씬 좋습니다. 자연광이 좋다는 것은 그것이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변화에 있어서 다양하고 풍부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빛의 변화에 따라 색이나 질감, 그리고 모양 및 형태까지도 변화됩니다. 하나의 작은 광선이 온 방안의 분위기를 침울한 상태에서 즐거움에 넘치게 변화시킬 수도 있고, 설교대나 벽걸이 또는 조각 작품에 햇빛이 와 닿도록 만들어진 작은 창은 시판되는 어느 조명 기구보다도 효과적입니다. 햇빛이 늘 비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비치기만 하면 벽에 뚫어놓은 창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실내 공간에 대한 자연채광의 비중은 과거 수십 년간의 역사를 보더라도 건축가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1950년대 미이스의 신봉자들은 자연채광에 별로 치중하지 않았으며, 1960년대 카안의 신봉자들은 반대로 자연채광을 중요하게 여겼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도 자연채광은 공간과 형태의 예술적 표현수단으로서 중요시 되었습니다. 자연채광의 예술은 아직도 살아 있고 건재합니다.
그러나 자연채광의 과학은 잘못 인식되어 19세기 중반에 영국인들이 발달시킨 자연채광의 과학은 전구의 발명 이후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서투른 과도기적 시기로서 적절히 기능을 다할 만큼 충분한 전기조명도 없었으며, 또한 자연광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는 과학도 없었습니다.
1940년대에서 195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자연채광에 대한 과학이 다시 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새로이 유행된 것은 고대 이집트식의 고창이나, 빛을 반사시킨 달리는 조명장치 등을 쓴 2방향 또는 3방향에서 채광된 방이었습니다. 1950년대에는 자연채광이야 말로 대단한 관심사였습니다.
이와 같은 자연채광의 부활에 관하여 주목해야 될 사실은, 새로운 기술에 의하여 천장을 낮게 하고, 결과적으로 실내의 볼륨을 적게 할 수 있으며, 건설비와 난방 유지비를 감소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950년대 중반에 공기조화장치가 보급되기 시작하였고, 전기료도 저렴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창이나 자연채광은 점점 사라지고 사람들은 변화가 없고 따분하게 전기조명된 천장 밑에서 창문이 없는 상자 안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즉 자연채광의 과학은 인기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카안과 같은 몇몇 건축가들은 완전히 인공적인 환경으로 치닫는 경향에 저항하기도 했으나 자연채광의 예술은 패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의 에너지 위기는 자연채광이야말로 건물의 설계에 있어서 가장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자연채광에 의한 쾌적성을 가슴 속 깊이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