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심리적 환경
오늘날의 건물은 혼자서 설계하기에는 너무 복잡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도 만년(BAF)에 가서는 그의 팀에게 공식적으로 일을 맡겼으며, 실제로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는 설계과정 중 지침을 해석하기 위한 수단으로 컴퓨터의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습니다.
요즈음 건물에 쏟는 사고력이나 창조성은 많은 전문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통합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그 전문가들이란, 개념적 단계를 다루는 디자이너, 건물의 유형을 다루는 전문가, 프로그래머,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경 설계가, 토목 기술자, 적산기사, 건설시스템 전문가, 음향 기술자, 기계설비 기술자, 전기설비 기술자, 공사관리 전문가, 시방서 작성 전문가, 공사 행정 담당자 등등 무수히 많습니다. 그런데 설계 단계에 참여하게 된 건축의 가장 새로운 멤버는 보통 심리학자 또는 사회학자로 불리는 행동과학의 전문가들입니다. 1960년대 중반, 이들 전문가들이 참여하게 된 이래 건축가들 사이에는 그들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애매하고, 추상적이며, 아름다운 그러나 지극히 막연한 어휘들을 즐겨 쓰던 건축가들은 행동과학자들이 만들어내는 주옥같은 말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여유 있는 행동을 위한 장치, "강제력, 행동 인풋(input), 지각된 환경, 지각된 밀도, '환경의 질, '전체론적 시야. 그리고 인간행동에 유효한 환경' 등이 바로 그 것입니다.
그러나 건축가들은 잠시 다른 경우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행동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침식하려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아예 모든 것을 맡아서 독차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또는 물리적인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 설계 팀에게 그들은 보다 균형을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 문이 열리는 방법만 가지고도 사람들을 고독하게 만들거나 사회적인 연대성을 느끼도록하여 그들의 행복을 좌우할 정도로 건축이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해낸 행동과학자들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여러가지로 생각해 본 것입니다. 실제로 미술관에서 문짝의 중요성이 그림이나 조각품 또는 사람들과도 경험되듯이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건물은 자살자들에게 자살을 조장하게 할 수도 있고 어떤 것은 막을 수도 있습니다. 동근 방은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인 접촉을 더하게 해주며, 양론원에 있는 노인들을 관찰해 보면 복도의 끝에 사는 노인이 일찍 사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건물은 확실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용자의 만족이나 욕구 불만에 관해서는 이용자의 동기, 운영 방법, 정책 등이 더 중요하며 건물은 그 다음에 해당된다는 것에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일치된 의견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건물이 중요하다는 전제가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공간이나 형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경우도 있고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물은 이용자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알고 있는 건축가에 의하여 설계되어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건축가들은 물리적 환경에 대한 이용자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특히 이용자가 빛, 소리, 촉감, 냄새와 같은 감각적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물리학자이며, 행동과학자인 포어스터(Heina von Foerster)는 최근 젊은 건축가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맥루한(Marshal McLuhan)보다 더 영웅시되는 사람으로 1975년 애틀랜타시에서 만난 건축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지각할 때 실은 우리 자신이 그 환경을 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기본적인 얘기입니다. 실제로 건축가들은 그들이 생각하고 바라는 것처럼 물리적 환경을 '발명'하지는 않았고, 건축가 자신, 이용자 자신이 발명하는 것입니다. 포어스터는 이 점을 다시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신 자신이 지각하지 않는 것은 지각되지 않았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당신이 보지 못한 것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건물이 좋지 않게 느껴지면 왜 그 건물을 좋아하지 않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사람과 건물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과 건물, 즉 그 양쪽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감정적으로나 지성적으로 침체된 상태라고 하면 그 건물도 '죽은' 것처럼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인가 지각할 의사가 있다면 어떻게 하면 건물과 자신이 상호 작용하는가를 익히고, 전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경우, 한 가지 방법은 건물을 사람 대하듯이 하는 것입니다. 그 건물이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또는 미워하고 있는가? 그것은 뚱뚱한가, 날씬한가? 당신을 위협할 만큼 사나운가 또는 아주 온순한가? 위력을 보이려고 과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신경질적이어서 당신마저 신경과민으로 만들고 말 것인가? 또는 오히려 마음을 가라앉혀 줄 것인가? 우호적인가, 아니면 저속할 정도로 꾸밈이 많은가? 자존심을 갖고 있는가? 사교적인가 비사교적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건축과 이용자의 상호작용
건물의 이용자는 건물과 상호작용하고 건물에도 영향을 미집니다.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우리는 건물을 만들고 그 다음에는 건물이 우리를 모양지어갑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의 말은 당연하지만 거기에 몇 가지 더 첨부할 것이 있습니다. 즉, 사람들은 환경을 지각하고 환경에 반응할 뿐만 아니라 환경과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건물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꼭 들지 않으며, 이용자들은 종종 자신들에게 맞도록 내부를 변경하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그들의 환경을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감옥에 있는 죄수는 벽에 무엇인가를 끼적이면서 자신의 개성을 확립하려고 하며, 또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페인트나 그림으로 환경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경영자는 사무실에 손을 대어 환경을 바꾸려고 합니다. 실제로 사무실 건물에서 공간의 가변성에 대한 개념, 즉 오픈 플래닝은 사람들과 공간이 달성해야 할 여러 가지 목적에 따라 서로에게 잘 적응되도록 의도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반응만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집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이웃 사람들도 역시 좋아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설계팀 중에서 행동과학자가 사람들의 가치체계 차이를 알아내도록 해야겠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용자, 경영자, 소유자, 그리고 방문자까지도 자신의 과거 경험, 지식, 그리고 인격 형성 과정에 따라 전혀 다른 상호작용을 건물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반 사람들은 어떤 것을 선호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축가들이 좋아하는 그런 건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경험에 따라 평가하게 되며, 그것은 충분히 실험된 믿을 수 있는 형태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배우고 발전할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들은 최초에 내린 평가를 조금씩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새롭고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형태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파리의 에펠탑도 처음에 세워졌을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했으며, 뉴욕의 유엔본부 건물도, 브람스의 교향곡 제2번도 그랬습니다.
나오자마자 일반 대중에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훌륭한 미술, 음악, 그리고 건축의 기준이 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즉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이미 오랫동안 확립된 형태에 대한 추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형태란 오래되면 쉽게 싫어지기 마련이고, 겨우 현상태만을 유지하기 위한다는 것은 예술이나 과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즉시 좋아하거나 항상 좋아할 새롭고 타당성 있는 건축의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건축가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예술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건물은 감상의 수준을 한층 높여줍니다.
행동과학자들의 가장 가치 있는 공헌은 아마도 형태에 영향을 주는 가치나 목표, 그리고 개념을 건축가들이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일 것입니다. 건물에 물리적인 확고한 형태를 주는 제반 요소들, 즉 형태 결정 요인들은 건축도면이 시작되기 전에 파악되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설계팀 가운데의 행동과학자들이 큰 공헌을 하게 되며, 그들은 건물이 제 구 실을 다하는가를 조사하는 단계에서도 또한 필요하게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건축가와 행동과학자들의 협동은 그 깊이를 더하게 될 것입니다. 건축가들은 당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하며, 당신은 건물의 이용자로서 그 만큼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요컨대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과 건축의 상호작용인 것입니다. 당신이 건물을 판단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건물의 가치 판단 기준
건물을 판단하려고 할 때, 우선 의도했던 목적에 얼마나 적절한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훌륭한 건물, 위대한 건물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보편성 있는 척도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지금 입주하는 사람은 프라이버시를 원하지 않을지 몰라도 다음 세대에 가서는 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물은 가변적인 어떤 융통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음악당, 박물관, 병원, 그리고 특히 학교와 같이 많은 수의 이용자가 사용하는 큰 건물들은 각자의 개성에 영향을 미칩니다. 개인은 대집단 가운데에서 그의 개성을 잃는다고 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도대체 얼마만큼의 사람들의 집단이면 각자의 자기의 개성과 자기의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해답은 사회학이나 조직심리학적 측면에서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해답은 우선 집단의 크기에 영향을 미치고, 다음에 건물 안에서의 공간편성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예를 들면 500명의 집단이라면 이 경우 각자는 자기의 개성을 갖고 구분될 수 있다는 답이 나올 것입니다. 2,000명의 집단을 다루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 500명씩 4개 집단으로 나누는 것이 행동과학적 해결입니다. 따라서 건물은 4개의 다른 집단을 4개의 명확한 단위 건물로 분산시켜 수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분산화된 학교나 병원을 보게 되는 경우에 옮거나 그르거나 간에 이 분리된 물리적 형태의 이면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이유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며, 그 것을 알게 되면 건물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건물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어디에 있는지 길을 잃은 듯이 느껴지지는 않았는지? 어떤 건물에서는 방문객들이 몇 발자국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방향감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건물들도 아마 방문객을 맞아 그들을 돌보도록 설계되었을 것이고, 방문객을 맞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면 건물이나 건물군은 명료하고 알기 쉬운 통로를 만들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미궁에 빠진 느낌을 적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중정, 분수, 조각물과 같은 무언가 눈에 띠는 기준점을 건물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이용자 입장에서 건물 안에서 방향감을 잃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어느 건물에서나 바라는 것입니다.
건물을 분석하려는 노력은 어느 것이나 그만한 값어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