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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상장주의 (Symbolism)

by invest-study 2024.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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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상장주의 (Symbolism)

 

건물의 형태가 심벌처럼 된 것도 있습니다. 즉 교회의 뾰족탑은 심벌입니다. 뾰족탑이 없으면 기독교 교회가 아니라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 밖의 종교적 심벌에는 이슬람교의 미나렛(minaret)이라고 하는 뾰족탑, 러시아의 양파형 돔 또는 1920년대에 미국의 성서지대(Bible belt)에 급속히 퍼졌던 십자가가 없는 상자형 '침례교회' 등이 있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전환한 시기의 은행 건물들은 그리스 신전처럼 굳건하고 당당해 보여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누가 감히 신전을 털어갈 것인가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일 것입니다. 요즈음 어떤 아파트 건물들은 건축가였던 망사르(Francois Mansart)의 망령을 머리 위에 쓰고 프랑스의 성채처럼 보이게 하려합니다. 그 프랑스 성채의 서투른 모방이 우아한 생활의 심벌인지 또 상징적인 향수인지 모릅니다.

창조성의 발전에 역행하는 향수적인 운동이 정기적으로 일어나지만 그 모방된 양식은 오리지널에 비하여 더 좋기는커녕 같아 본 적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 양식의 부흥도 오리지널과는 비할 바가 못 되었으며, 고딕양식의 부활도 고딕 대성당에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미국의 초고층 건물들을 '상업의 신전이라는 심벌로 보고 있습니다. 1920년대에는 아무리 작은 소도시에서든 초고층 건물 하나쯤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것은 발전의 심벌이었고 그것을 갖지 못한 도시는 저시되었습니다. 1960년대에 중상층의 가정은 성공의 심벌로서 교외 및 도심지에 예전 영국의 전원저택을 닮은 주택과 그 앞에 주차된 캐딜락 자동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캐딜락이 대형 승용차인 밴으로 바뀌었을 뿐 별로 달라진 것은 없지만 때때로 가짜를 만드는 엉터리 짓을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합니다. 엉터리 짓은 논리적 형태를 침식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에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려 깊은 몇몇 건축가들, 특히 로버트 벤추리(Robert Venturi)나 데니스 스콧 브라운(Denis Scott Brown)은 이런 엉터리 짓은 현실이고 나쁜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 학구적인 건축가들에 의하면 장식 과다인 베르사유 궁전풍의 화분이나 겉모양만 따른 망사드 지붕, 구조적인 의미가 없는 회반죽을 바른 아치, 모양으로만 걸쳐 놓은 계단 등은 모두 사회적인 지위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야말로 지나치도록 정연하게 계획된 주택지와 그들이 보여주는 단조롭기 그지없는 시각적 질서에 생기를 주는 심벌들이라고 할 수 있으며, 논리적인 것은 진부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저속한 것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자아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떻게든 이 저속한 것들이 판을 치고 있어서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로변의 상업개발 지역이나 휴스턴에서의 정면만을 그럴 듯이 꾸며놓은 즉석분화수용식의 연립주택 등을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사는 도시에서는 어떠한가? 만약 이런 종류의 것들을 사람들이 원하고 또 좋아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이 건축을 얻는 데에 필요한 것이라면 그대로 둘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좋아해야 한다고 멋대로 생각하는 건축가들보다 사람들이 어떤 건축을 갖고 경험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짜-엉터리 짓으로 가득한 문화 속에 산다는 것은 먼 안목으로 볼 때 결코 유익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계속되고 있을지라도 재미있을 수 있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가짜-엉터리 짓은 문화의 얄팍함을 폭로하는 격입니다. 발전된 형태의 문화는 진정한 음악, 진정한 시각 예술, 진정한 무대 예술이 필요합니다. 가짜-엉터리 짓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직업상 책임을 포기하고, 신념이나 목표를 값싸게 팔아넘기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건축가들이 많습니다.

어떤 건축가들은 건물은 '그 시대를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듣기에는, 그릴 듯하지만 만약 그 시대가 사회적인 격동이나 전쟁의 위기 또는 환멸의 시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시대를 반영하여 지극히 불안스러워야 한다는 얘기인가?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철학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언젠가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 시대를 상징한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누가 그 안스러운 건물 안에서 살고 싶겠습니까? 불안스럽고 신경이 약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조용히 쉴 수 있는 안전한 분위기이며, 건축가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개인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혁신적인 활력, 솔직한 양식, 위엄, 따스함, 그리고 편리한 생활 등을 두루 갖춘 도시 주택, 콘도미니엄, 아파트, 단독주택 등이 많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현재는 가짜-엉터리가 판을 치고 있지만 그것도 얼마 안 가서 제 갈 길로 돌아설 것입니다. 그렇지만 비논리적인 형태는 항상 존재하게 될 것이며 이에 대비해 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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